강남 3구 신규 세입자 2명 중 1명 "이젠 월세 살아요"
정승권 | 2015-04-14 | 2157
"시세차익 노리기보다 안정적 임대수익" 집주인 자금여력 클수록 월세선호 뚜렷
대치동 은마선 월세 물량이 전세의 2배…세입자도 전세보증금 부담에 월세 고민
#1.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서 전세를 살던 중견기업 부장 이 모씨는 아이 학군 문제로 서초동 유원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보증금 4억원, 월세 60만원 보증부 월세로 계약을 바꿨다. 서초동 인근에서 전세를 수소문했지만 전세금이 너무 오른 데다 적당한 전세 매물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2. 지방에서 올라와 선릉역 인근에 위치한 직장에 취업한 30대 여 모씨는 회사 주변에서 전셋집을 구했지만 포기했다. 직장인들이 많아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뿐더러 고가의 전세금을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안 돼서다. 결국 보증금 3000만원, 월세 70만원하는 전용 33㎡ 원룸에서 살기로 했다.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3구를 중심으로 월세 시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전세 품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기존 세입자들의 경우 전세보증금을 무리하게 올려줘서라도 전셋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군이나 직장 수요로 새로 강남 지역에 진입한 경우에는 이미 전세와 월세 비중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치솟았다.
13일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강남3구에 새로 진입한 세입자들의 경우 전세와 월세 비중이 각각 54대 46의 비율로 나타났다. 강남구의 경우엔 전세 대 월세 비중이 52대 48까지 치솟았다. 서울 전체로 보면 전체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40%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강남 신규 진입의 경우 월세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셈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데이터 기준으로 강남3구 아파트만 따져볼 때 전체 임대 거래 중 월세 비중은 2014년 27%에서 지난 3월 35%까지 치솟았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강남3구뿐만 아니라 서울 관악구 등 신규 진입 수요가 높은 지역은 월세 비중이 전세를 이미 넘어선 경우가 많다"며 "전세가 아니라 월세로라도 강남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수요 초과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공급 측면에서 봐도 강남 지역 전세 매물은 부족한데 월세 매물은 넘쳐난다. 전세를 선호하던 세입자들도 차츰 월세 시대에 적응해가는 양상이다. 대치역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대치동 일대 아파트 집주인들 중 목돈이나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만 전세를 놓고 아닌 사람들은 전세계약이 만료될 때쯤 보증부월세로 돌리고 있다"며 "최근에는 보증부월세 등 월세거래가 전세거래보다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실제로 대치동 학원가와 인접한 대치 삼성1차 전용 59㎡는 지난달 월세 5건, 전세는 3건이 실거래됐다. 임대가격은 보증금 2억5000만원에 월세 120만원,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00만원 선이다. 집주인이 세를 놓은 경우가 많은 대치동 은마아파트에도 보증부월세 물량이 전세 물량보다 2배 이상 많다. 전용 84㎡의 경우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20만원, 또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50만원 선이다.
송파구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잠실동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한 관계자는 "잠실 일대 아파트 전세 물건이 귀해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더 올리거나 보증부월세로 돌리고 있다"며 "잠실리센츠 전용 84㎡ 월세만 이달 들어 3건 거래됐다"고 밝혔다. 다만 강남 이외의 지역의 경우 월세화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강남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다.
목동신시가지도 학군 수요가 강하지만 강남3구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세 전환 움직임이 덜했다.
신현우 이화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목동7단지 전월세 비중이 7대 3일 정도로 목동지역은 아직 전세 물량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좋은 강남 집주인들의 경우 초저금리로 전세를 받아봤자 마땅히 자금을 굴릴 곳이 없어 월세를 선호해 월세거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집주인들이 대출을 이용한 매도차익보다 월세를 통한 수익 창출로 방향을 틀고 있다"며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서 전체 임대차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70%를 훌쩍 뛰어넘은 상황에서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금을 1억원 이상씩 무리해서 올리기보다는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는 게 안전하다고 지적한다.